1. 최근 받은 피드백과 문제의식의 변화
최근 받은 여러 피드백을 검토하면서,
최종 제출 문서에 대한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연구 주제를 설명할 때 “선행 연구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 따라서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전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연구의 방향도 literature review 중심 + research gap 설정형 구조로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반드시 그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실제로 학문사적으로 보면 선행 연구가 거의 없거나 제한적인 상태에서도,
강력한 연구 질문 자체만으로 성립한 연구 사례는 적지 않다.(아마 이래서 계속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던 거겠지?.....)
결국 문제는 “선행 연구의 유무”가 아니라,
왜 내가 그 방식에 의존하려 했는가였다.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나는 당시 연구 질문을 충분히 밀고 갈 수 있는 데이터나 방법론이 완전히 갖춰져 있지 않다고 느꼈고,
그 결과 기존 연구 구조를 “안전한 틀”로 가져와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계속 논리정합성을 기존 연구에서만 찾았음.
이러다 보니 선행 연구가 많은 현대 정책을 선택한 거지.......)
하지만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영역을 고려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반대일 수 있다.
기존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연구 질문이 어떻게 성립하는가가 더 본질적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선행 연구의 부재가 어떻게 연구의 정당성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학문사적 사례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연구자가 직면하는 상황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특정 문제를 설명하는 선행 연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회적 사건이 신문, 법률, 행정 기록이라는 서로 다른 기록 체계에서 어떻게 다르게 분류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직관적으로 중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문적으로 정교하게 정리된 사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역사학사적으로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구조적 조건이다.
특히 패러다임 전환을 만들어낸 연구들은 대부분 이러한 공백 상태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다음으로 바뀐다.
“왜 선행 연구가 없는가?”가 아니라
“이 부재는 어떤 학문적 구조에서 비롯되었는가?”
거다 러너는 여성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상태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녀의 핵심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여성은 역사에서 사라진 존재인가, 아니면 애초에 기록 방식에서 배제된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성사 자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부족함 자체가 이미 역사 기록 체계의 구조적 결과라는 점이다.
즉 부재는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라,
기존 기록 체계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로 전환된다.
One explanation is that those readers were mostly women and girls, and thus invisible. Gerda Lerner called attention to their invisibility in her The Female Experience: An American Documentary in 1977, and in 1979 gave us a new way to look at history in her seminal The Majority Finds Its Past: Placing Women in History. "Women have been left out of history," Lerner tells us in the latter,
not because of the evil conspiracies of men in general or male historians in particular, but because we have considered history only in male-centered terms. We have missed women and their activities, because we have asked questions of history which are inappropriate to women. To rectify this, and to light up areas of historical darkness we must, for a time, focus on a woman-centered inquiry, considering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a female culture within the general culture shared by men and women. History must include an account of the female experience over time and should include the development of feminist consciousness as an essential aspect of women's past. This is the primary task of women's history. What would history be like if it were seen through the eyes of women and ordered by values they define?
출처 : https://muse.jhu.edu/article/248440/summary
Project MUSE -- Verification required!
Verification required! In order to better serve you and keep this site secure, please complete this challenge. If you are trying to perform text/data mining, please contact Customer Service for assistance.
muse.jhu.edu
조앤 켈리는 기존 역사학의 핵심 단위인 “시대 구분(periodization)” 자체를 비판했다.
그녀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는 모두에게 르네상스였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 자료가 부족하다”가 아니라,
애초에 르네상스라는 범주 자체가 특정 경험(남성 중심 경험)에 기반하여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즉 선행 연구의 부재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기존 분석 범주 자체의 편향성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로 재해석된다.
부연 설명>
01> 시대 구분(periodization) 자체를 문제화
즉, 전통적인 역사학의 시간적 구분법이 여성의 경험을 포괄하지 못한다.

02> 남성 중심적 범주의 편향성 “모두에게 르네상스였는가?”
즉, 남성 중심의 역사적 진보가 여성에게는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


03> 이데올로기의 가변성 “분석 범주 자체가 편향적이다”
즉, 기존의 문헌이나 사료(분석 범주)가 여성의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남성 중심적 사회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출처 : https://share.google/FpSF3ptKPinHgQmxN
*아래 내용부터는 저자의 원문 확보가 어려워, 본문 내용과 관련된 논문을 근거 자료로 활용하였습니다.*
3.3 라나지트 구하 — “이중 기록 체계의 침묵 구조”
그의 서발턴 연구는 식민주의 역사 서술뿐 아니라 민족주의 역사 서술까지 동시에 비판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왜 피지배 집단은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구하의 진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즉 두 기록 체계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집단을 지운다.
여기서 “자료가 없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신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두 개의 기록 체계가 동일하게 특정 주체를 삭제하는 방식”
부연 설명>
01>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역사학의 공통된 한계 비판
구하는 기존의 서술 체계가 서발턴을 역사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인도의 역사가들로 구성된 서발턴 연구집단은 식민주의 역사학, 민족주의 역사학,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엘리트주의와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인도사를 재구성하려는 기획을 추진해 왔다."

02> ‘이중 기록 체계’에 의한 주체 삭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농민의 주체성을 지웠는지 명시한다.
"식민주의 역사학에서 단순한 행정 처리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고 민족주의 역사학에서 단순한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왔던, 그리고 유럽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전정치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어 왔던 서발턴 농민을 능동적인 역사적, 정치적 주체로 재현하고자 한 것은 의미 있는 문제제기이자 포스트식민 역사(학)로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중요한 기여였다."

03> 자료의 침묵을 읽어내는 방법 ‘결을 거슬러 읽기’
자료가 없다는 결론에 그치지 않고, 지배자의 기록을 역으로 분석하여 주체를 복원하고자 한다.
"따라서 구하는 봉기에 적대적인 그 사료들을 '거꾸로' 혹은 '결을 거슬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
구하에게 역사 연구 대상으로서의 농민 봉기는 그 원인이 혹은 그 원인에서부터 유래하는 진행 과정이 실증적으로 묘사되어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의미가 혹은 그 의미화의 과정이 읽혀져야 하는 '텍스트'였던 것이다."
(p.302)
김택현 (2009).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 연구'와 역사학 (I) - 식민 정책과 농민 봉기의 재구성 -. 영국연구, 22, 285 - 313.
참고 사항
논문은 위와 같이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기록 체계가 피지배 집단을 각자의 방식(행정적 통제 vs 민족적 동원)으로 '대상화'하여 주체성을 소거했다고 말한다.
즉, 구하의 작업은 단순히 "자료가 없다"는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배자의 언어로 기록된 사료들(행정 문서, 재판 기록 등)을 '결을 거슬러 읽음(reading against the grain)'으로써 그 침묵 속에 숨겨진 서발턴의 정치적 행위와 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의 결을 거슬러 읽는다는 말은 '텍스트의 결(의도, 주류적 해석, 표면적인 서사)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모순이나 억압된 목소리를 찾아내어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나무의 결(grain) 방향대로 깎으면 부드럽지만, 반대 방향(against the grain)으로 깎으면 거칠고 어려운 것처럼
비판적 읽기는 더 어려울 테다.
진즈부르그는 단 하나의 재판 기록을 통해 전체 사회의 세계관을 복원했다.
여기서 핵심은 통계나 일반화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비정상적으로 평범한 하나의 사례가 구조 전체를 드러낸다”
즉 선행 연구의 부족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수준의 분석 단위를 요구하는 신호가 된다.
부연 설명 *원문 그대로 가져왔고, 별도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수정은 하지 않았다.*>
01> 단일 사례를 통한 전체 세계관의 복원
"《치즈와 구더기》는 16세기 말엽 이탈리아 북부의 프리울리 마을의 방앗간지기였던 메노키오라는 한 개인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치즈와 구더기》는 메노키오라는 방앗간지기가 어떻게 당시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과는 다른 종교관을 갖게 되었는지를 해석학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즉, 메노키오라는 개인이 생각하고 있던 세계관과 종교관을 충실히 재현해 냄으로써 중세 농민들은 피동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을 것이라고 단정해 왔던 우리들의 인식을 수정하게 해 주었다." (p.250-251)
02> 통계와 일반화가 아닌, ‘다른 차원의 분석’
"거시사가 인간의 삶을 위에서 조망했다면, 미시사는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 내면을 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중략) 이렇듯 역사 속의 '잊혀진 사람들'을 역사의 무대 위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좀더 다양한 목소리들을 발굴하려 노력해야 한다. 관련 자료가 유실되었거나 혹은 자료로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 시공간적으로 인접한 고문서의 사료를 통해 틈새와 틈새를 연결하려는 미시사가들의 시도는 사실 유일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p.249)
03> ‘비정상적으로 평범한 하나의 사례’가 구조를 드러냄
"긴즈부르그가 메노키오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속에서 민중문화의 흐름을 보고 있으며, 종교개혁이후 강화된 카톨릭측의 이단에 대한 억압, 즉 당대의 권력관계를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메노키오라는 개인을 당시대의 전체상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p.251)
"긴즈부르그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메노키오는 전형적인 농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즈부르그는 '주의깊게 연구해 보면, 메노키오라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농민문화로 환원시킬 수 있는 특징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p.251)
이영선. "〈치즈와 구더기〉의 미시사적 접근". 서강대학교 도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https://libmedia.sogang.ac.kr/dl_image/IMG/01/000000003285/SERVICE/000000003285_01.PDF)
참고 사항
이영선의 글을 읽으며 "선행 연구의 부족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수준의 분석 단위를 요구하는 신호가 된다."라는 걸 곱씹게 되었다.
미시사가들이 기존의 거대담론(구조사/사회과학적 역사)이 해결하지 못한 공백을 사료의 틈새를 메우는 방식으로 접근했고
이 내용은 책 소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저자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가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과 일상에서 떠들어댄 이야기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의 장서와 발언 사이의 '틈'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16세기 유럽의 역사적 변동을 읽어내고자 했다.
또한 거시사가 통계와 계량적 엄밀성을 통해 거대한 이론틀을 정립하려 했던 것과 달리,
진즈부르그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일상과 행동을 탐색함으로써 복잡한 사회 변동의 실상에 육박하고자 했다.
즉, 기존의 거시사가 무시하거나 침묵 속에 묻어버렸던 무명의 개인과 그들의 사료를 조명함으로써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68865
치즈와 구더기: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 카를로 진즈부르그 - 교보문고
치즈와 구더기: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
product.kyobobook.co.kr
일단 나는 미시사보다 거시사를 통해 미시사를 발굴하고 싶은 건데, 진즈부르그 같은 사례를 고려하여 거시적 구조가 만들어낸 통계적 평균이나 지배적 담론 뒤에 가려진 '예외적 개인'을 역추적해보고자 한다.
거시사가 제시하는 거대한 이론틀을 일종의 지도처럼 활용하되, 그 체계 내에서 설명되지 않는 '사료의 틈새'를 사냥꾼처럼 파고들어 그 억압된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진즈부르그가 메노키오라는 한 개인을 통해 16세기 유럽의 다층적인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냈듯, 나 역시 거시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그 이면의 구체적인 인간과 그들의 사소한 행위가 어떻게 사회 변동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지 증명하고 싶다.
여담인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위 사례가 단순히 사학(史學)의 범주에 머무는 것인지,
혹은 더 넓은 학제적 연구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여성 얘기는 정치외교 전공 교수님에게서 들었고,
나머지 두 개는 서양사 교수님에게서 들었는데,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기록학 얘기까지 더해지면서,
사료를 읽어내는 시선이 점차 다층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왜 디지털 역사학 연구가 단순한 데이터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학술적 행위인가"를 체감하게 되었다.
디지털 도구는 단순히 사료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적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파편화되어 읽히던 기록들의 상관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재구조화하는 인식론적 도구라고 생각한다.
데이터화된 과거를 통해 기존의 서사 체계에서는 보이지 않던 틈새를 발견하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은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넘어선 고도의 역사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유를 요구한다.
(이걸 체감한 계기가 토크나이저를 활용했을 때인데,
결국 인문학 능력 없으면 아무리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흉내 내도 별 의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https://uourstar.tistory.com/29
디지털 역사학 : tokenizer를 잘 쓰려면 뭘 더 공부해야 할까
"공유 및 검토 목적이 달성된 듯하여, 자세한 내용은 비공개 전환했습니다.현재 관련 내용은 연구계획서와 Git 저장소에서 별도 관리하고 있으며공개 글에서는 문제의식 중심으로만 소개하게 되
uourstar.tistory.com
결과적으로 디지털 역사학은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과 역사를 읽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이 결합하여,
과거의 진실에 더 다층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현대적 의미의 '결을 거슬러 읽기'인 셈이다."
위 사례들을 종합하면 하나의 공통 구조가 나온다.
이 구조는 디지털 인문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즉 디지털 방법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다.
선행 연구의 부재는 결코 단순한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선행 연구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이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분석 단위와 시각이 존재하는가”
이다.
결국 연구의 정당성은 자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기존 학문이 보지 못했던 구조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 디지털 인문학 공부 : 분석 도구 및 파이프라인 구성 (0) | 2026.06.26 |
|---|---|
| 디지털 인문학 공부 : 전산언어학에서의 일제강점기 연구와 역사학에서의 일제강점기 연구는 왜 다른가 (0) | 2026.06.26 |
| 디지털 인문학 공부 : 디지털 역사학 데이터 인프라 비평 보고서 (0) | 2026.06.25 |
| 디지털 인문학 공부 : 근대 한국어 토크나이저 적용 및 전처리 학습 기록 (26.01-02 기록) (0) | 2026.06.24 |
| 디지털 인문학 공부 : NLP 전처리 후속 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모두 연구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0) | 2026.06.23 |